놀이기구를 타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랫배가 간질간질 해요.

그 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말라비틀어진 소프트 렌즈처럼

희망이나 기대 따윈 사라진 지 오래.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에

상업적 이유로 만들어진 특별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유치함이라니.

 

7번 국도를 타고

서울서 4시간 반이나 떨어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작은 어촌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느꼈다.

zsa zsa zsu

 

인적이 드물어

오가는 것이라고는 고작 대게가 전부라.

버스 기사 아저씨와 단 둘이

넘실대는 동해 바다의 파도를 끼고

두런 두런 얘기하는데 전연 어색함이 없다.

 

그에게서 나는

5시간 거리를 4시간만에 주파하는 뛰어난 운전실력외에도

귀찮을법한 일일텐데 마주오는 버스와 연신 인사하는 센스,

그리고 잊지 않고 꿈을 향해 걸어가는 묵묵함을 보았다.

나는 못할 것 같은 선하게 사는 법을

그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다.

 

어둠이 내린 하늘 아래로

멀리 드문 드문 보이는 불빛.

아직도 연탄을 때고

조그마한 항구에 배 몇 척 둥둥이고

자유가 전부인 동네 개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그저 정겨운 곳.

 

창 밖에 바다가 보이고

진한 커피향이 그득한

편안한 소파와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커다란 탁자.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카페를 발견하는 기쁨이라니.

 

zsa zsa zsu

 

2009.02.02 13:37

내비에도 찍히지 않는 마을이었다.

 

늦은 저녁,

구름 사이로 별이 빛났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

가을이다.

 

하얀 공간.

높은 천장과

사방으로 소통하는 듯 열려있는

하다못해 화장실도 다보이는

미완의 아니 여백의 미.

 

매주 만나 영화를 보던 우리는 이제

년이면 두어 번 만나기도 힘들지만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어색함이 없다.

 

이제는 일등 신랑감이 된 요리왕 HD와

불가사의한 M의 연애와

늦깍이 의대생이 된 설거지쟁이 JH,

여전히 말이 없는 SJ와

고된 사회생활로 한껏 마른 YK.

귀여운 개똥지빠귀 철사머리 커플과

제일 먼저 자러간 KBS J기자.

그리고 이 시대의 한량, 나.

 

애매한 조합이나 꽤 괜찮은 궁합이다.

 

끊임없이 먹고

웃고 떠들고 게임하고

결국 지쳐 잠들고.

 

이제 우리는

영화를 볼 체력은 없지만

연애, 결혼, 재테크, 자녀교육 등

다양한 화제로 끊임없이 떠들 아줌마 근성은 그득해진 것이다.

 

오랜만에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침없이 서로를 드러낼 수 있었던

은밀한 동병상련의 시간.

 

우리 소박한 모임 하나 만들까?

 

여유롭지 못한 주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금요일 수업이 토요일로 미뤄지는 바람에

완벽한 주 5일은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사실 또다시 바람이 바뀌고 있었다.

 

방종의 끄트머리엔

최소한의 책임을 달랑달랑 달고 가야했으니

읽어야 할 책과 논문, 그리고 노트북을 챙긴다.

 

야금야금 쌓아둔 마일리지로

KTX 특실 왕복 티켓을 끊는다.

쾌적한 환경, 빠른 속도. 그러나 부족한 낭만.

하지만 혼자 생각하고 일하기엔 괜찮은 장소.

 

바다ek 내려다보이고,

인터넷이 가능한 곳을 찾다보니

S다방에 주저앉게 돼 버렸다.

 

오랜만에 몰입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며

혼자만의 세상에서 희열로 충만한 시간.

 

이제 막 성수기가 끝나고

다시 올 성수기를 기다리는 바다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낭만적이다.

 

아, 이런 행복.

 

2008.09.22 01:21

 

여름 조개구이는 겨울만큼 맛있지 않아.

여름 바다는 겨울바다보다 더 비린내가 나.

여름 바다는 겨울바다보다 더 지저분해.

그리고 여름 바다는 겨울바다보다 외롭지 않아.

 

겨울에 찾는 제부도를

여름에 보고 있으려니 낯설다.

갯벌에서 잔뜩 조개를 캐려 했는데

때에 맞추어 들어간지라

이미 물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궂은 날씨.

장대비에 강풍까지 올 여름 최악의 날씨.

이런 날엔 집 안에서 따뜻하게 배깔고 누워서

부침개나 해먹는건데.

 

근데 그거 알아?

이렇게 궂은 날씨에 된통 당하면

오래 오래 기억나는 거.

특히 나처럼 장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에게 말이지.

 

오래 오래 기억날 것 같은 날.

 

2008.08.27 22:58

 


 

 

창녕.

시골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소박한 곳.

 

하릴없는 올 여름은

휴가겸 피서를 즐기는 것조차

사치스러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막바지 피서를 즐기러 갔는데

내내 비만 온다.

 

10월 말 창원에서 열릴

제 10회 람사르 총회를 기념해

소벌로 향했다.

우포늪은 일본식 표기라 소벌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안개 덕에

이른 아침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소벌.

소벌 나이는 1억 4천.

 

1억이란 돈을 만져 본 일도 없고

1억명의 사람을 본 적도 없어서

1억이란 숫자는 생경하기만 하다.

 

휴일 아침 소풍 나온 가족들의 걸음 뒤로

억양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얄궂게 흩어진다.

 

훗날 나도

주렁 주렁 늘어난 식구를 이끌고

이 곳을 다시 찾을 때는

침묵의 공백보다 달뜬 수다가 어울리도록

공부나 틈틈이 해야겠다.

 

평화롭고 평범한

그런 휴일 아침이다.

 

2008.08.27 22:08